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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권이 가상자산업에 대한 진출 허용을 새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기존 실명계좌 제공에 머물렀던 역할에서 벗어나 수탁, 자산관리,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 본격적인 사업 참여를 염두에 둔 행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말 시중·인터넷·특수은행 등 23개 정회원 은행의 의견을 수렴해 ‘은행권의 주요 건의사항’ 초안을 마련했다. 해당 건의안에는 가상자산업 진출 허용, 투자일임업 확대, 비금융업 진출, 신탁제도 개선 등 금융 산업 전반의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은행권은 그동안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제한적 방식으로 시장에 참여해왔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이 가상자산을 직접 보관하거나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수수료 수익 확보, 고객 기반 확대, 서비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보다 능동적인 진출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관·법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자산 보관·운용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커스터디(수탁)부터 예치, 스테이킹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수익 모델 확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지금의 실명계좌 제공만으로는 중개자 역할 이상을 수행하기 어려운 한계도 명확해졌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자산이 디지털로 이동하는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적 고민이 계속되어 왔을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 은행은 이미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은행은 해치랩스, 해시드와 함께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해 수탁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신한은행도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블록체인 기술기업 블로코 등과 함께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움직임도 국내 은행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JP모건,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모건스탠리 등은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수탁(Custody), 지급결제 등 주요 금융 서비스에 가상자산을 연계하며 수익 다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정책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부터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추진 중이며, 한국은행 역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민간 스테이블코인과의 연계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금융결제 시스템 전반의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새 정부가 공약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현실화될 경우, 은행권이 공동 발행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JP모건의 JPM코인, 일본 미즈호은행의 J코인처럼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송금 수단으로 활용하는 흐름은 이미 글로벌 금융권에서는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법령이 정비되면 유사한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가상자산의 경우 거래시장의 특성이나 기술적인 구조가 기존 금융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금융기관들이 거래소나 수탁 전문업체 등과 협업해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며 “국내 은행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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